“요한 웨슬리가 지옥을 지키는 수문장에게 ‘여기에 장로교인들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수문장이 그렇다고 답했다. 웨슬리가 연이어 성공회교인들, 침례교인들, 감리교인들도 있는지 질문하자, 수문장은 모두 있다고 답했다. 그 후 웨슬리가 천국을 지키는 수문장에게 가서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이번에는 모두 없다고 답했다. ‘그럼 누가 천국에 있느냐?’라는 웨슬리의 마지막 질문에 수문장은 ‘천국에는 오직 그리스도인만 있다.’라고 대답했다.”(Biblical Studies Foundation 웹사이트 중)
위는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가 꾼 꿈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참 그리스도인인 성도(saint)와 특정 교회에 다니는 교인(proselyte)의 결국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웨슬리 자신이 오랫동안 교인으로 살다가 참된 성도가 되는 체험을 가졌기에 이러한 꿈을 꾸지 않았나 싶습니다.
1703년 영국의 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요한 웨슬리는 소위 말하는 ‘모태교인’으로, 목사관에 살면서 철저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거룩한 클럽(Holy Club)’이란 신앙 단체의 지도자로, 신학 공부와 경건 생활에 집중하여 자타가 공인하는 신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1735년 아메리카 신대륙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대서양을 건너가는 도중 배를 뒤흔드는 큰 풍랑을 만났을 때, 죽음의 공포 속에서 떠는 자신의 모습과 그런 자신과 달리 평안한 목소리로 찬송을 부르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신앙의 큰 도전을 받습니다.
자신의 신앙에 회의를 가진 웨슬리는 결국 선교를 실패하고 영국으로 돌아와, 모라비안 교도의 지도자를 만납니다. 그리고 자신이 온전한 신앙을 갖지 못했음을 발견한 후, 1738년 5월 24일 런던의 한 집회에서 로마서 주석을 듣던 중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게 되는 믿음을 얻게 됩니다.
지금도 감리교회에서는 1738년 5월 24일을 ‘요한 웨슬리의 회심일’로 지키고 있는데, 놀라운 것은 웨슬리가 그날 이후 대중 앞에서 공식적으로
“전에는 제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는 당시 신앙인들에게 큰 도전을 주는 충격적인 고백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예수님이 구세주인 것을 믿고 특정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교인으로서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한다면 ‘정상적인 기독교인(Christian)’으로 자타의 인정을 받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성경에서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 25:32,33)
위의 내용은 마지막 때 심판의 장면인데, 모든 사람이 오른편에 서는 양과 왼편에 서는 염소로 나누어질 것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심판의 결과는 서로가 상반됩니다.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마 25:34)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
즉, ‘하늘과 땅 차이’ 보다 더 큰 ‘천국과 지옥’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전체 내용을 자세히 보면, 놀랍게도 심판을 받는 왼편에 있는 자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이나 다른 종교를 믿는 이교도들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들 중에도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마 25:44)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불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성도와 교인이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시 37:28)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도다.”(마 23:15)
위의 말씀처럼, 성도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지 않지만, 교인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지난 시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라는 스페셜 테마에서 언급했듯이, 그리스도의 몸인 유일한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사람만이 성도이고, 눈에 보이는 특정 교회에만 속한 사람은 교인일 뿐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그래서 예수님도 위와 같이 경고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며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어도 위와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 4:3)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은 그들을 향한 당신의 뜻을 나타내셨는데, 그 뜻은 위와 같이 ‘하나님처럼 거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온전히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사는데 꼭 필요한 것이 하나님과 같은 온전한 거룩함이기 때문입니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시 5:4)
위와 같이,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악과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죄를 갖게 되자 그들을 낙원에서 쫒아내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그 후 죄인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도록 만드는 유일한 것은 죄 뿐임을 아래와 같이 강조하셨습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사 59:2)
그렇기에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을 향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 4:3)고 하시며, 당신과 같이 거룩해지길 바라셨습니다. 천국에는
“거기 죄인 전혀 없으니 거룩한 자 뿐이라.”(찬송가 233장)는 찬송 가사처럼, 죄인은 한 명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염소는 축복 받은 양의 초장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위대한 목자를 따라 영원한 행복의 길로 갈 수 없습니다. 죄인으로서 아무리 4,50년 동안 많은 봉사와 선행, 심지어 복음의 일을 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결코 너를 알지 못한다.’고 할 것입니다.”(찰스 스펄전, Metropolitan Tavernacle Pulpit, p281,282)
찰스 스펄전 역시 위와 같이 심판 받는 염소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 곧 처음 태어날 때의 상태인 죄인의 위치에 머물러 있는 교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죄인의 상태에서 아무리 평생 동안 교회를 다니며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할지라도 결국 염소와 같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고 새 생명을 얻어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온전하게 행하신 역사만이 신자를 의롭게 만들고 정죄와 심판이 없도록 보장한다.”(이안 머레이, Evangelicalism Divided, Chapter 6)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모두 거듭난 사람이고 거듭난 사람은 모두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다.”(존 라일, Being Born Again, Chapter 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셔서 우리 안에 더 이상 ‘죄인’이 없게 하신다. ‘은혜로 구원 받은 죄인’이라는 표현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만일 죄인이라면, 그는 구원 받은 것이 아니다.”(오스왈드 챔버스, The Philosophy of Sin, Chapter 3)
위와 같이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도 죄인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참 그리스도인 곧 성도가 아니라 거듭나지 못한 교인으로 구분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기에 성도와 교인이 섞이게 되었고, 결국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마 13:49)라는 말씀처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그래서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많은 말씀을 하신 후 하나님과 같이 온전한 거룩함을 얻어야 된다고 결론을 지으셨습니다. 즉,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과 같은 거룩함(聖)을 얻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고전 1:2)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신자들을 성도와 교인으로 나누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거듭나지 못한 채 죄인으로 살아가는 교인들이 성도가 될 기회가 있는데, 교인들을 무조건 성도로 부르면 수많은 교인들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을 뿐더러 결국 무서운 심판까지 받게 되는 심각한 사태가 초래됩니다.
“모든 죄를 고백하고 버릴지라도 여전히 죄인이라면, 그는 단지 그리스도인이 되다만 유사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매튜 미드, 유사 그리스도인 p79)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목회자 매튜 미드(Mattew Mead)는, 그리스도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유사(類似)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The Almost Christian Discovered> 라는 저서를 통해 상세히 설명했는데, 죄인의 상태는 그리스도인이 아님을 위와 같이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멋지고 빛나는 것처럼 오늘 한국 교회에도 수많은 유사 그리스도인이 활개를 칩니다. 우리는 이 책을 읽고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자신을 검증해야만 합니다. 그릇된 구원의 확신에 안주하다가 돌이킬 기회를 잃지 마십시오.”(유사 그리스도인 도서 소개 중)
“그들은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그들 중 아무도 스스로를 유사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회 안에는 분명히 유사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목사나 전도사도 있고, 장로나 권사, 기타 직분자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옷을 입고 이 시대를 이끌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교회와신앙, 2001년 2월 1일자 목회 단상 중)
결론적으로 한국 교회를 비롯해 유사 그리스도인이 많은 오늘날 기독교계의 참된 개혁과 부흥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성도와 교인의 구분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