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마태복음 7장 22절부터 23절에서 예수님을주여 주여라고 믿고 여러가지로 신앙 생활을 잘 한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해 뒤에 보면 예수님께서 모르신다고 하시며 거부하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나타날 수 있는지요? 그들의 잘못은 무엇인가요? (조*원 님 질)
A 먼저 본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 23)
본문은 심판대 앞에서 버림 받는 신앙인들이 누구인지 미리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버림 받는 이들의 공통점은, “우리가 ~ 노릇하며, ~ 쫓아내며, ~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라고 자신들이 행한 잘한 것에 마음을 두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자기 의에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는 ‘인간이 행하는 선한 행위’를 의미합니다. 자신을 선하다고 믿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서 힘쓰지만, 결국 자기 의는 자기를 진정으로 위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게 만드는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1~3)
위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죄가 아니라 그들의 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의는 자기 죄보다 더 심각한 악인 것입니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사 64:6)
이사야 선지자는 인간의 의를 더러운 옷으로 비유하는데, 이는 마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자기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리기 위해 만든 치마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 치마는 아담과 하와가 자기들의 수치를 가리기 위한 그들의 의였지만, 그 치마를 벗어야만 하나님의 의를 의미하는 가죽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자기 의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도 뭔가를 행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자기가 하려고 하는 데에 집중을 하게 됩니다. 즉, 자기 의는 자기 행위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사 14:13)
피조물들 중 자기 의에 가장 먼저 사로잡힌 존재는 타락하여 사탄이 된 천사장 루시퍼입니다. 그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많은 것을 얻게 되었지만 하나님을 대적할 때를 보면, 위와 같이 ‘내가 하늘에 올라' 하면서 자기 행위에 그 마음이 사로잡혀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10)
첫 사람 아담 역시 범죄하고 난 후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벌거벗게 하셨는데도 ‘내가 벗었으므로' 하면서 자신의 행위에 잡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떤 일들이 자기로 말미암아 되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자기 의와 자기 행위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기에 서두의 본문처럼 예수님께 거부당할 수밖에 없습니다.